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죽음을 향해 글을 쓰고 있었다.
삶의 영토에서 더 어두운 곳, 아직 손이 닿지 않는 곳, 그렇지만 내가 언젠가 가게 될 곳을 향해 글을 썼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는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태어나고자 애를 쓰고, 자기를 찾고자 꼼지락 대듯 글을 쓰는 일은 분명히 삶을 향하고 있다. 이미 내가 발을 담가 버린 곳의 반대방향으로, 지금 여기가 아닌 곳을 향해 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이란 과거가 아닌 언제나 미래에 있는 것이고, 숨을 쉬는 것은 우리가 들이마셔 이미 안에 있는 숨을 밀어내야 하는 것이기에 나는 앞으로, 죽음 이후의 삶으로 향한다. 언제나 환상에서 깨면 현실이 기다리고 있고, 현실에서 깨면 초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은 여전히 삶에서 깨어나 들어선 죽음에서도 역시 다시 한번 깨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접어든다. 희망은 쥐고 있을 때 버겁고 고통스럽지만 그마저 없을 때 그 사소한 희망이라고 그립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망상과 환각들 사이에서 잘 고르고 골라 희망을 벼린다. 닦아낸다.
견딜만하다.
메시아가 너무 많다
적그리스도는 생각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수많은 메시아들에게 얻어 맞고 걷어 차인 기분이었다. 실제로 엉치뼈나 콧등이 아픈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뼈 마디마디가 정말로 쑤셔온다고, 적그리스도는 느꼈다. 너무 많은 메시아들이 적그리스도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공격하고, 모욕하고, 분노를 표출했다. 적그리스도는 이제 적그리스도 짓이 신물 날 지경이었다. 실은 자신이 정말로 적그리스도인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이렇게 많은 메시아가 있어서야, 적그리스도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적그리스도가 항상 평소에 경계해왔던 대로 그들 모두가 진짜 메시아는 아닐지도 모른다. 적그리스도는 머리를 움켜쥐고 양 무릎에 팔꿈치를 얹은 채, 일부러 어린아이처럼 끙끙 대는 낮은 신음을 내보았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하나하나가 메시아임이 틀림없다고 적그리스도의 마음이 속삭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부정하고 싶어도 그들 모두가 메시아임에 틀림없었다. 단지 문제는 그들이 너무 많고, 강대하고, 무엇보다 성스러운 분노에 차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한 때 적그리스도는 다른 적그리스도들을 가장 경계했다. 말씀에 따르면 어쨌든 적그리스도는 여기저기서 나타날 테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찾아올 단 한 명의 메시아보다는 일단, 다른 적그리스도들을 조심하고 견제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껏 적그리스도는 다른 적그리스도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면 적의나 경계심이 아니라 우정과 협력으로 함께 똘똘 뭉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튼 메시아가 너무 많았다.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웅크린 채로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고민을 해나갔다. 혹시라도, 이 세상에 적그리스도란 나 하나뿐일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곧 메시아들에게 잡혀 돌팔매질을 당하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매달릴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지금처럼 끙끙 거리며 무저갱 속으로 던져 집어넣어질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흐르는 식은땀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려운 생각이 스물스물 그의 종아리를 타고 허벅지로 올라 그 위 무릎에 얹힌 두 팔을 따라 올라왔다. 머리카락 사이에 얽힌 손가락들이 가시 면류관처럼 느껴졌을 때, 마침내 적그리스도는 혹시 자신이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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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에선 천천히 거품이 사그러들어 꺼지듯 세계가 적막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청각을 잃는다는 건 내 귓속에만 존재하는 그치지 않고 길고 커다란 소리가 다른 소리를 전부 먹어버리는 일이었다. 무의미한 굉음이 내 귀에 가득 들어차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게 막아버리는 과정이었다. 이제 와선 차라리 그렇게 귀를 괴롭히는 이명 없이 그냥 물속에 가라앉아 잠기듯 소리를 잃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홀로 누워 잠을 청할 때마다 내가 갇히게 된 그 의미 없는 소음의 동굴에 내던져지지 않아도 될 텐데, 소리를 잃어간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의미도 전달하지 않는 그 길고 끊기지 않는 사이렌 소리를 듣지 않아도 좋을 텐데. 적어도 완전한 적막이라는 평안한 어둠 속에서 귀와 신경을 좀 쉬게 할 수 있을 텐데. 세상의 소리가 전부 사라진 뒤에 길고 날카로운 이명만이 나를 찌를 거라고 생각하면 짜증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처음 소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이어폰으로 바흐를 듣고 있을 때였다. 절반 즈음 부서진 첼로음이 들려와 파편으로 조각조각 나를 찔러댔다. 이어폰이나 컴퓨터가 고장인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베이퍼웨이브나 로우 파이 힙합 분위기로 믹스한 버전인가, 의아해하며 다른 음악을 틀었는데, 여전히 소리가 절반 정도 뜯겨져 나가 부서진 자국을 드러낸 채로 들려왔다. 그 날카롭게 뜯겨나간 뾰족뾰족한 모서리들 하며 망가진 주파수의 어그러진 굴곡이며, 나는 잠시 그대로 굳은 채 혹시 세계가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붕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오래전부터 의심했던 대로 현실이라는 게 사실은 달콤하고 허울 좋게 꾸민 거짓말이고 이제야 실은 지옥이 맞다고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모든 음악이 그런 식이었다. 하드 록을 들어도, 어떤 비트의 힙합을 들어도, 스윙 시절의 재즈를 들어도 모든 것이 엉망이었고 알던 음악이 아니었다. 나는 이어폰과 기계를 바꿔 시험해보고, 다시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귀에 무언가 들어찬 것처럼 먹먹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그 먹먹한 막이 엷게 찢기면서 작지만 높은 고주파의 이명이 들리는 것을 미세하게나마 느꼈다.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이내 바닥에 주저앉아 식은땀을 흘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욕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변기에 구토를 하고 있었다. 다 게워내고 간신히 다시 숨이 돌아와 헐떡이고 있는 중이었다. 땀으로 온 몸이 젖고 허리부터 등까지 척주를 따라 딱딱하게 굳은 젤리가 뭉개지고 찌그러지듯 둔중한 통증이 퍼져왔다. 나는 다시 한번 저녁으로 먹었던 것을 게워내고 그대로 욕실 바닥에 웅크려 숨을 골랐다. 어지러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세계가 사방으로 빙글빙글 돌았다가, 다시 위아래로 흔들리며 크게 굴렀다. 눈을 감았다가 어지러움이 너무 심해 다시 뜰 수밖에 없었다. 욕실 타일 사이에 낀 희미한 곰팡이 자국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샤워기의 뜨거운 물을 틀었다. 옷을 입은 채로 머리와 얼굴을 적시고 입을 헹구고 몸을 따스한 물에 맡겼다. 그러자 천천히 기운이 돌아왔다. 욕실에 얼마나 있었을까, 십분? 삼십 분? 어쩌면 세 시간일 수도 있다. 씻고 나와 창을 열고 밤의 서늘한 공기에 몸을 말렸을 때는 이미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 모든 주택가의 불은 꺼지고 어두웠으니까.
대학병원에서 해주는 확실한 말이라고는 검사를 더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청력 검사를 하고, 머리를 잡아 이리저리 돌려보고, CT에 더해 MRI를 찍고, 방음부스에 들어가 헤드폰을 쓴 채 양 손에 하나씩 잡은 스위치를 번갈아 누르고, 손가락에 이런 저런 선이 달린 집게를 물린 채 신호에 따라 움직이고 나서도 이런저런 가능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약이 나오고, 다음 검사가 잡히는지 나는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와중에도 어지럼증이 간헐적으로 심하게 찾아왔다가 다시 잦아들고, 소리는 내 주변에 보이지 않게 들어찬 물을 간신히 통과해 들리는 것처럼 한 참 젖어 축 늘어진 채였다. 이대로는 장기적으로 청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어지러움이 있는 걸로 봐서 메니에르 증후군일 수도 있지만, 편향성이 강하지 않은 걸로 봐서 양 쪽 귀에 다 문제가 생겼다는 건데,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거든요. 어지러움을 줄이는 약을 드리긴 하겠지만, 이명 문제는 좀 더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약 드시고 한 달 뒤에 검사 잡아 드릴게. 그런데 그 검사가 비보험이라서... 병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의사의 말은 벌써 공기 중으로 떠올라 바싹 말라 부서져 버렸다. 나는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향하면서 그냥 다른 아무런 생각 없이 햇빛을 쬈다. 저주파가 잘 들리지 않는 귀를 가지고 널따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그냥 따스한 바람을 맞고 앞으로 뭐가 찾아오면 그때 그때 맞춰서 살아가자고 생각했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는 병 같은 건 일단 약을 다 먹을 때까지 접어두자고, 나는 빙글빙글 도는 머리로 그렇게 생각했다.
한동안 의자에 바르게 앉을 수도, 눈을 감고 머리를 기울일 수도 없었다. 그래도 한가득 받은 약을 절반 정도 먹을 시간이 지나자 약 때문인지 시간 때문인지 어지럼증은 점점 사라지고, 척추를 따라 진득한 젤리처럼 달라붙은 고통은 이제 끈적끈적한 자국만 남기고 녹아 사라져 내렸다. 머릿속에 낀 안개가 점점 걷힐 때 즈음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높고 기다란, 뾰족하도록 높게 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이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곧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늘었던 이명은 어느새 굵고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서 있어서, 당분간은...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점점 안으로 조여 들어와 언젠가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고 발끝으로 선 채로 그 차가운 창살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 수 밖에 없는 폐소 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좁은 감옥.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명은 착실하게 세계의 소리를 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익숙한 노래를 낯설도록 뭉개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물에 담가 잠기게 하고, 하루의 끝에 쉬려고 누운 적막한 어둠 속에 남들은 들리지 않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키웠다. 그래도 나는 웃었다. 다른 고통들은 점점 가시고 이명만 남았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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